무한도전의 삶을 살아가는 김원일씨가 북을 치며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김상진 기자

평범한 일상은 싫다. 그렇다고 튀는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자극받는다.

'무한도전'의 삶을 살아가는 김원일(55)씨, 그는 말한다.

"삶을 한 단어로 말하긴 어렵다. 다만, 내가 있어서 주변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한다. 그래서 열심히 나누며 살아가려 한다."고.

그의 본업은 노가다다. 제너럴 컨트렉터이며 홈 인스펙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부업(?)도 한다. 판소리와 검도를 가르친다.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한다. 한국고대사와 붓글씨, 한국화를 배우고 있다.

그의 일주일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월요일 저녁 한인타운에 나와 20~30명의 제자를 앞에 두고 판소리로 목청을 틔우며 한 주를 시작한다. 이튿날 저녁은 라크레센타에서 검도 사범으로 10여 명의 수련생과 함께 죽도를 휘두른다. 수요일은 한국고대사 공부방에 들러 한민족의 뿌리를 파고든다. 목요일은 판소리 개인 레슨만 있었으나 최근 시커먼 먹을 갈고 붓을 놀리며 서예와 한국화를 교습받는다. 금요일은 다시 판소리 강습. 토요일은 사람 만나는 날이다. 주중에 보기 힘든 지인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소주잔에 털어 넣는다. 일요일 저녁은 다시 라크레센타에서 호구를 쓰고 칼을 찬 무도인으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바빴습니다. 올해 들어와 다니던 10여 년 해오던 교회 성가대 지휘와 사물놀이패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이야기를 할수록 재미있다. 전반적으로 옛 것이나 한국 관련 활동에만 관심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성가대 지휘까지 했단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물론 서양음악이었습니다. 1986년 LA으로 이민온 뒤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된 후 USC 음대교수로부터 성악 레슨을 받았습니다. 늦은 나이였지만 나름대로 인정받을 정도로 소질이 있어나 봅니다. 바리톤 솔로이스트로 활동하고 단역이지만 오페라 라트라비야타에 출연도 했으니까요. 그러다 성대결절이 왔습니다. 3년 동안 치료하기 위해 백방을 뛰어다녔지만 못 고쳤습니다. 이 시기에 우연히 LA한국문화원에서 마련한 국악강습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영화 서편제를 보면서 천년학 대금 연주에 매료됐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대금, 해금, 아쟁, 북, 장고, 꽹과리 등 국악기와 판소리를 접하게 됐습니다. 근데 마음과 달리 국악기 배우기는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대신 판소리의 심오함에 빠져들었지요. 우리 소리가 표현하는 정도가 서양음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판소리를 배우면서 성대결절도 완치되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났고요."

그는 신명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리를 배우다 보니 '흥보가' 완창에 욕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명창 조통달 선생이 계신 전북 익산을 직접 찾아갔지요."

한국에 가면 열흘이나 2주 정도 익산으로 내려가 배우고 또 배웠단다. 그렇게 그는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꼭 한번 3시간짜리 흥보가 완창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빠르면 1~2년 안에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연습중입니다."

미국에서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 여럿 있지만 흥보가 완창자는 한 명도 없다. 그가 성공하면 미국 내 최초의 흥보가 완창자로 기록되게 된다.

그는 판소리를 가르치면서 우리의 음악, 혼,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한국 고대사 연구까지 공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리의 것이 무조건 오래되고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 그 원천은 어디인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의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판소리를 악보화하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틈나는 대로 판소리 단가와 수많은 아리랑에 대한 채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구전 민요에 대한 합창곡 편곡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좋은 소리를 후세에게 기록으로 남겨줘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그의 국악사랑은 교회 행사로까지 이어진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수 년 동안 국악예배를 만들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국악합창단도 기회가 되면 조직할 생각이다. 오르간 박사 학위가 있는 아내를 설득해 '사물놀이와 오르간을 위한 곡'을 작곡하게 하는 등 국악과 양악을 함께 엮는 일도 시도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우리 또래나 윗사람의 삶을 보면 단순하고 팍팍하다는 느낌입니다. 찾아보면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들을 수 있는 교양강좌가 많습니다. 고령화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Never Too Late'이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활기있는 시간으로 삶을 채워야 합니다.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있나요? 처음에는 서툴고 어렵지만 노력하고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떻습니까, 배우는 과정에서 얻은 사람이나 지식, 기술, 깨달음은 가치를 따지기 어렵습니다. 저도 때로 힘든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몽유병 환자처럼 다시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나갑니다.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직도 배고프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당히 말한다. "나는 무엇을 해도 행복할 자신이 있다"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진정 원하는 다른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나누는 삶이 있는 세상을 원한다. 그래서 시인 안도현의 이 시를 좋아한다.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나는 누구에게 진실로 뜨거운 사람이었던가?'(시 전문)

"연탄재처럼 나의 재능을 다 써버리고 이 세상을 뜨고 싶습니다. 작은 재능이라도 모두 전해주고 빈 몸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는 판소리를 무료로 가르치고 있고 검도도 장소대여비가 나올 정도만 받고 있다.) 가진 부가 여유롭지 않아 대형 자선사업은 못하더라도 내가 가진 재능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회에 환원하고 가겠다는 마음입니다."

그의 도전은 삶에 대한 열정이며 애착이다.

"내가 직접 빚은 도자기에 서화를 넣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제 배우기 시작했으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문제이지 않겠습니까?"

그의 카카오톡에 새겨진 "다 주고 죽자"는 문구가 바위처럼 다가온다.

김병일 기자 mirsol@koreadaily.com

김원일씨는

1958년 경기도 부천에서 평양이 고향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했고, USC 대학원에서 건축감리로 석사를 받았다.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사우디아라비아 공사현장을 누볐다. 1986년 도미해 LA에 정착했다. 아내 김은희(56)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장남 현우(25)는 UCLA 대학원에서 건축을, 차남 진우(21)는 UCI에서 정보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